삼국시대 통치구조인 부체제에 대해 정리해볼까요?
삼국 시대의 통치구조인 부체제에 대해 알아볼까요?
안녕하세요. 고조선과 초기 삼국의 건국에 이어 이번 포스팅은 초기 고구려, 백제, 신라가 건국하고 어떻게 통치를 하였는지에 대해 부체제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고조선 사회의 바깥에서 시간적 공간을 지니며 각각 독자적으로 건국하고 발전하였고, 4세기 중반 이후 서로 국경을 접하게 되기 전까지는 삼국 개인마다 개성적인 면모가 많이 존재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당대의 역사적 조건에 의해, 삼국 초기의 정치구조에서는 일정한 공통성을 보여준다. 부체제는 삼국의 공통적인 속성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부체제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계루부, 소노부 같이 특정 세력집단의 단위로 부를 사용하였고 부의 개념은 국가가 커지면서 점차 발전하여 정치세력이자 세력집단의 지역을 모두 뜻하는 개념입니다.
부체제 하에서 고구려의 5부, 신라의 6부, 백제의 부여, 고구려계 이주민집단으로 구성된 부 등은 삼국 성립기에 연맹체를 형성하여 삼국건국의 주체가 되었던 집단들입니다. 그리고 삼국이 점점 발전하고 성장해 나감에 따라 여타 피정복지역의 지배층의 일부가 부의 주민으로 복속되었습니다.
부체제 아래서 부의 주민은 귀족에서부터 빈민에 이르기까지 계급적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삼국의 국가 구조 내에서 볼 때 여타 피복속지역의 주민에 비해 집단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정하였습니다. 원래 부에 속했던 주민들과 자신의 땅이 정복되어 강제로 이주되어온 주민들은 같은 부에서도 차별이 존재햇습니다. 신라에서는 삼국 말기까지도 6부의 민에게만 경위가 주어졌고 지방민들에게는 외위만 주어지는 등 서로 차별되었습니다.
정치적 단위이자 지역적 단위인 부체제에서 삼국 초기 각 부는 중앙정부에 의해 외교권 등이 박탈되었으나, 부 안에서의 일에 대해서는 상당한 자치권을 행사하였습니다. 중앙집권화가 되지 않고 연맹체적 성격을 지니다 보니 각 부의 자치권을 어느정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부체제에서 각 부의 자치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3세기 전반까지도 고구려에서는 소노부가 자체의 종묘와 사직, 즉 조상신과 토지신 등에 제사를 지내는 등 상당한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었음은 각 부의 자치권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또한 각 부내에는 부외부라고 불릴 수 있는 몇 개의 집단이 존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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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국내성 위성사진 |
한편 삼국 초기 각 부로 복속되어진 피정복지역의 주민들은 강제이주 되어질 당시의 소국 또는 읍락 단위로 각각 중앙정부에 통합되었습니다. 중앙정부에서 이들 읍락은 어느정도 자치권을 인정하여 자치를 행하며 중앙정부에 공납을 납품하고 군사적 협력과 지원을 제공하였습니다.
이렇게 자치권이 어느정도 허용된 읍락은 삼국의 통치구조내에서의 위치와 예속 정도는, 정복될 당시의 상황과 그 세력 정도에 따라, 일부는 5부나 6부의 동맹세력으로, 일부는 집단예민으로 편제되는 등, 어느정도 차별을 두어 피정복민들을 대우를 하였습니다.
피정복민을 집단별로 예속시킨 것은 중앙정부의 지배력이 읍락 내부에 까지 미칠 수 없기 때문이며, 이는 당대에까지 읍락의 공동체적 유제가 잔존하여 사회의 기층조직으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3세기 초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었던 동예의 읍락은 산천을 경계로 한 일정한 구역을 각각 지니고 있었는데 씽씽의 지식블로그이 구역에 다른 읍락의 사람은 함부로 들어올 수 없었고, 위반하면 벌로서 소, 말 등을 바치게 하였습니다.
각 구역 내에는 산림과 하천, 풀밭 등이 공유지로 존재하였고, 경작지는 그 읍락의 주민들에 의해 점유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점유된 것이 중요한데 점유와 소유의 큰 차이점은 점유되어진 땅을 점유자의 마음대로 매매나 처분할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다른 읍락의 구역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으니, 곧 경작지의 매매는 읍락 전체의 동의에 의해서만 가능하게 됩니다.
점유지를 판매하는 것은 개인이 아닌 전체동의에 의해서 이루어지므로 경작지에 대한 권리는 현재의 점유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상위 권리가 수장으로 대표되는 읍락 전체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면과 공유지의 존재 및 읍락구성원간의 친족관계 등이 당시 동예의 읍락의 공동체적인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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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 공산성 백제 왕궁터 |
이렇듯 고구려, 신라, 백제 초기의 통치 구조의 기본적인 틀은 자치적인 연맹집단들을 조금씩 통합하고 발전시켜 지배, 예속, 흡수하는데에 있었다. 이들 관계는 피라미드 형태로 5부나 6부가 중앙의 지배집단이 되고 지방의 읍락들이 각각 그에 예속되어 있으며, 각 부는 다시 중앙 왕실에 복속된 형태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부체제 하에서 어느정도 자치권을 가진 각 부의 귀족들은 자신의 신하를 두었으며 상당한 자치력을 지닌 세력기반을 지니고 있었다. 왕은 초월적인 지배자라기보다는, 그러한 귀족들 중의 대표자격인 존재였습니다.
부체제 하에서 왕은 통치자가 아닌 대표자격인 만큼 왕국의 중대사를 결정하고, 여러 부들에 대한 통합력과 국가의 동원력을 최대화하는 데 있어서는, 각 부의 귀족들로 구성된 회의체가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부체제 내에서 왕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절대적으로 강한 권력자가 아니라 여러 부의 대표로서 왕 혼자서 독단적으로 중대사를 결정하지 못하고 각 부의 대표회의에 따라 중대사를 결정해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씽씽의 지식블로그 후에 왕의 권력이 중앙집권화하면서 대표회의는 사라지고 왕이 초월적인 존재가 됩니다.
연맹체 단계에서는 때로는 이 귀족회의에서 왕을 폐위하고 새왕을 옹립하는 일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귀족회의는 그 뒤 왕권의 강력함에 따라 귀족회의의 권력이 약화되기도 했으나, 대표회의는 명목상으로 삼국 말기까지 존재하였습니다. 대표적인 귀족회의로 신라의 화백제도, 백제의 정사암고사, 고구려의 대대로 선임 등은 이러한 귀족회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싱으로 삼국시대 통치구조인 부체제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부체제는 삼국의 통치구조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기본개념입니다. 연맹체 단계에서 부체제는 정치세력단위이자 지역개념, 통치 단위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다음 포스팅은 삼국이 어떻게 변화하고 멸망하는 내용에 대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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