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건국 초기의 모습을 알아볼까요?
초기 국가 신라의 건국에 대한 정리
안녕하세요. 고구려, 백제에 이어 신라의 건국에 대해 포스팅해볼까합니다. 초기국가 시기의 신라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중앙집권적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채 부족 연맹체 성격으로 왕의 힘이 강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왕의 힘이 커지면서 중앙집권적 성격으로 발전합니다. 그러면 초기 부족연맹체 성격의 신라의 모습을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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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 진흥왕 척경비 |
처음에 건국되었던 신라는 원래 사로 또는 사라라 하였습니다. 진한의 12개 국가 중의 하나였던 신라의 정치적인 성장 과정은 그 군장 명칭의 변화에 따라 몇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거서간, 차차웅 단계입니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를 보면 박혁거세와 그 아들인 남해가 거서간이라고 스스로를 칭하였고, 남해는 또한 스르로를 차차웅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거서간과 차차웅의 의미를 살펴보면 거서간은 어떤 족장 또는 군장이라는 뜻으로 여겨지고, 차차웅은 제사장을 의미하였습니다. 이는 초기 신라의 정치적인 군장은 제사장적인 성격을 강하게 보이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거서간, 차차웅 시기에서는 경주평야 일대의 여러 집단은 강한 정치적, 군사적인 응집력을 만들어내지 못하였고 마을단위의 농업공동체적인 면이 아직 상당히 유지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신라에서 제사 의식은 신라 건국의 터전인 경주평야의 주민집단을 응집시키는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였습니다..
그 뒤 한반도 북쪽으로부터의 고조선에서 내려온 사람들의 이주와 중국에서 건너온 철기문화의 보급 등에 영향을 받아, 신라의 근본인 경주평양의 집단은 정치적인 성장을 해나갔습니다.
신라 주변 지역집단과의 교류을 확대하고 그 세력범위를 확충하였다. 그 중에서 울산 감포방면의 세력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였고, 나아가 울산 지역 세력이 경주평야로 진출하여 신라의 주요 세력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울산지역의 경주평야의 진출은 석탈해의 등장은 그러한 사실을 반영해 줍니다. 이 단계의 신라는 보다 넓은 지역의 집단들을 아우른 연맹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연맹체의 군장의 칭호가 니사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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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식리총의 금동신발 |
또 여기서 왕의 칭호가 거서간, 차차웅에 이어어 니사금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마립간으로 또 바뀝니다.
니사금은 연맹체내 강력한 세력들의 우두머리들이 모인 회의에서 동의에 따라 세습되기도 하며, 때로는 선임되기도 하였습니다. 동의제도에 따라 니사금의 지위는 몇몇 유력한 세력의 가계에서 돌아가면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박, 석, 김의 세 세력이 교대로 니사금의 지위를 차지하였다는 것은 그러한 면을 보여줍니다.
또한 박,석,김의 교립이 가능하였을 만큼 연맹체 내의 주요 세력들은 상당히 독자적인 세력기반을 유지하였습니다. 한편 니사금시대가 진행되어 가는 동안 신라는 현재 경주, 포항, 부산지역인 한반도 동남부 진한의 여러 나라들 중에서 주도적인 세력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거서간, 차차웅, 니사금에 이어 4세기 후반 이후의 마립간시대입니다. 어원을 살펴보면 마립간은 대군장이란 뜻으로 해석되며, 다른 말로 매금이라고도 하였습니다. 마립간 단계에 접어들면서 신라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됩니다. 국내적으로는 박, 석, 김 3개 성씨에서 오직 김씨 세습왕권이 자리를 잡으면서, 6부의 여러 집단들에 대한 중앙정부의 다른 세력에 대한 통제력이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국외적으로는 처음에는 고구려 세력에 밀려 고구려의 강한 영향력 하에 종속되었으나 곧 백제 및 가야와 동맹을 하여 고구려세력을 배제해 나갔으며, 그와 동시에 소백산맥 이남의 여러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해 나갔습니다. 고구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영토가 넓어짐에 따라 막대한 재물과 인적자원 등 물질적인 부가 경주로 유입되어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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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차돈 순교비 |
신라왕의 명칭뿐만 아니라 무덤의 유형도 시기에 따라 변화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경주지역에 밀집해 있는 풍부한 부장품을 담은 거대한 적석목곽무덤은 마립간 시기의 신라왕실 및 귀족들의 무덤입니다. 그 전의 니사금시대의 무덤들인 토광목곽무덤과 비교할 때 그 규모와 화려함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를 보여, 마립간시대의 사로국과 그 귀족계급의 성장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초기 연맹체 성격의 신라가 거서간, 차차웅, 니사금, 마립간 시기를 거치면서 6세기초 이후 마립간을 왕이라 칭하고 국호를 신라로 확정하였으며, 나아가 17등 관등제를 확립하고 관료조직을 확충하며 성문법인 율령을 반포하는 등 국가의 지배체계를 정비해 나갔으며, 불교를 공인했습니다.
6세기 이후 신라의 왕은 이제 귀족회의의 대표로서가 아니라 초월적인 권력자로서의 면모를 점차 지니게 되었고. 대외적으로는 한반도의 중부지방과 낙동강 서안 가야지역을 흡수하여, 고구려, 백제 양국과 더불어 한반도의 패권을 다투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삼국이 완성이 되어 한반도에서 치열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상으로 신라의 건국 초기의 모습에 대해 정리해보았습니다. 신라는 초기에 연맹체 성격으로 절대 권력을 가진 자는 없고 형식상 왕이 있었으나 거서간, 차차웅, 니사금, 마립간 시기를 거치며 마침내 왕이라는 명칭이 나오고 절대자로써 신라라는 나라를 고구려, 백제와 맞먹는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포스팅은 이렇게 커진 나라들을 어떻게 통치했는지 삼국시대의 통치제도에 대해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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