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형성에 대해 알아볼까요?[한국사]
부족국가 형성부터 초기국가 고조선의 형성까지의 흐름을 알아볼까요?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은 한국사의 시작인 초기 국가의 시작과 고조선의 형성에 대해 적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한반도 첫 국가 하면 고조선이라고 하는데 사실 국가 명칭은 고조선이 아닙니다. 정확한 명칭은 조선인데요.
한국사에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태조 이성계, 세종대왕이 있는 15세기 건국된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역사학자들이 편의 상 조선을 고조선이라고 명명해서 우리들은 고조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국가의 형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까요?
예, 맥, 한족 사회에서 농경사회와 청동기 문화가 발전하면서 많은 변화가 사회적으로 생겨났다습니다. 이전 시기의 이동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바뀌면서 채집생활에서 농경 생활로 변화했습니다. 그 결과 대규모 공동노동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생산 활동을 농경사회에서 가능했씁니다.
그에 따라 씨족 내에서 가까운 혈연 관계에 있는 부족들끼리 친족집단을 이루고 촌락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나아가 촌락공동체 내에서도 친족 집단 간에 경제적인 높고 낮음이 형성되고 농경사회에 꼭 필요한 비옥한 땅과 물 자원을 이용하는 권한에 대해 갈등이 생깁니다.
촌락 공동체 내에서 이러한 갈등이 많이 생기게 되자 등장한 것이 부족장입니다. 부족장은 촌락공동체들간의 갈등과 분쟁을 조정하고 질서를 유지하여 부족 간의 결합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는 정치적인 지배자라기 보다는 사회적인 지도자로서 성격을 가졌습니다. 부족장은 사회적 지도자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지도자도 같이 겸했습니다. 이 다시 종교는 조상신이나 태양신, 물의 신 등의 자연신을 믿고 따르고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겸한 의식이였습니다. 부족장은 사회적인 지도자와 제사장의 위치를 겸했으며 이를 제정일치 사회라고 합니다. 이를 나타내는 유물은 초기 청동기 사회에 제기의 성격을 가지는 비파형동검이나 청동제의 거울, 청동 방울 등이 대표적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족 집단들 간의 경쟁이 심해졌고 그로 인해 집단간의 우열이 커지면서 더 이상 부족장으 힘만으로는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는 사태에 이릅니다. 이 후 부족간의 대립이 커지고 전쟁과 대립으로 흡수 통합되면서 새로운 사회 모습이 생깁니다.
바로 국가의 출현입니다. 초기 공동체 부족 집단에서 규모가 커지고 경제적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회가 생기고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집단을 지배하면서 더욱더 규모가 커지면서 국가가 생기게 됩니다.
이때 생긴 국가를 초기국가라고 부르고 초기국가는 농업경제와 청동기 문화를 가지고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 새로운 초기 국가들이 서서히 생겨났습니다. 그 중 가장 역사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초기 국가가 조선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태조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고조선이라고 역사학자들이 명명하였습니다.
고조선은 위만왕조까지를 포함하지만 위만왕조와 그 전시기의 왕조를 구분하기 위해 편의적으로 위만왕조를 위씨조선으로 부르고 그 전시기를 고조선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고조선의 존재는 <관자>라는 문헌에 처음 등장합니다. <관자>에는 고조선과 제나라 간의 교역에 대해 간단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관자>에 대해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제상이었던 관중에 가탁하였으나 실제 그 주된 내용은 전국시대 사람들의 저술입니다. 단 전국시대 이전부터 내려오던 어떤 전승을 토대로, 전국시대인들이 자기새대의 사상을 담아 기술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즉 고조선이 늦어도 기원전 4세기 이전부터 고대 중국에 알려져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위략>에 의하면 기원전 311~270년대에 고조선과 연이 각축하였다라고 나와있습니다. 따라서 고조선은 늦어도 기원전 4세기 이전부터 형성되어 제나라와 연나라 등 중국에 있는 나라들과 교류를 하며 상다한 정도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초기 부족국가 부터 초기국가의 형성, 고조선 형성에 대해 글을 써보았습니다. 다음 포스팅은 고조선의 어디에 형성되고 발전하였는지에 대해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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